스마트 시티, 스마트 팩토리, 스마트 카 할 것 없이 기존의 사물이 스마트 해진다는 얘기는 컴퓨팅 파워가 우리 주변에 스며든다는 뜻입니다. 사물인터넷, 5G, 내장형 AI 등 우리 주변에 침투한 컴퓨팅 파워, 엣지 컴퓨팅을 소개합니다.
글쓴이: 박범순(Adam Park)
싱가포르, 운전자에게 도로 침수 상황을 알린다
연평균 기온이 섭씨 26.8도에 이르는 싱가포르는 열대우림 기후입니다. 그 만큼 비도 자주 많이 내립니다. 연평균 강우량이 2,378mm 입니다. 최근 들어 집중 호우로 인한 도로 침수 사태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2015년에는 6일이던 침수일이 2016년에는 10일, 2017년에는 14일로 늘었습니다.
침수로 인한 비즈니스와 생산성 손실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무엇보다 운전자 입장에서는 도로 침수 상황을 몰라 꼼짝 없이 막힌 도로에 갇혀 있어야 하는 경우도 늘어났습니다. 싱가포르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하기로 결정합니다. 가로등의 침수 높이에 해당하는 위치에 센서를 부착하는 방식이죠.
시시각각 신호를 보내는 가로등의 사물인터넷 센서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도시 전역에 설치된 가로등에서 시시각각 아무 일도 없다는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는 사실. 아무 일도 없다는 사실을 중앙 관제센터에 알리기 위해 하루 종일 신호를 보낼 필요가 있을까? 오히려 괜히 일만 키운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죠.
문제의 원인은 바로 중앙 집중화 방식의 클라우드 컴퓨팅에 있었죠. 초연결시대에 진입하면서 세상 만물이 인터넷에 연결되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세상 만물이 시시각각 아무 일도 없다는 얘기를 중앙의 클라우드에 보낼 필요가 있을까요? 의미 없는 데이터를 처리하느라 정작 중요한 일을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 생길 정도죠.
위의 그림처럼 자율주행차, 드론, 모바일 기기, 풍력 발전기 할 것 없이 세상 만물이 인터넷에 연결되는 세상에서는 중앙의 클라우드로 모든 연결과 통신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결국 가장자리인 엣지에서, 다시 말해 사물이 있는 곳 가까이에서 연결하고 통신하도록 해야 하죠. 이를 돕는 개념이 엣지 컴퓨팅(edge computing)이며, 기술적으로 이를 실현해 가고 있는 것이 바로 안개를 뜻하는 포그 컴퓨팅(fog computing)입니다.
엣지 컴퓨팅으로 스마트 가로등을 만든 싱가포르
그래서 싱가포르 정부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방금 말씀 드린 엣지 컴퓨팅을 적용했습니다. 가로등 침수 센서에 문제가 없을 때는 그 내용을 인근의 엣지 컴퓨팅 플랫폼이 정리해서 예컨대 시간 당 한 번씩 ‘문제 없음’이라고 중앙의 클라우드에 전달합니다. 훨씬 소통 방식이 간편하고 자연스러워졌죠?
그럼, 침수가 예상되면 어떻게 할까요? 가로등 센서가 침수 상황을 감지하면 즉시 그 사실을 인근의 엣지 컴퓨팅 플랫폼에 전달하고 중앙의 클라우드에 통지합니다. 사실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죠. 인근 도로의 차량을 우회시켜야 합니다. 평소에는 하얗게 빛을 밝히던 가로등이 갑자기 빨간 빛을 내며 점멸하기 시작합니다.
멀리서도 빨간 가로등이 깜빡거리는 모습이 보이죠. 도로에 진입하려던 운전자가 한 눈에 문제가 생겼음을 파악하고 다른 길로 차를 돌립니다. 중앙의 클라우드로부터 명령을 기다리는 대신 홍수 피해를 감지한 스마트 가로등이 스스로 자율적으로 문제를 처리하는 모습. 이것이 바로 엣지 컴퓨팅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클라우드의 몰락? 엣지의 부상!
정보통신기술은 지난 1960-1970년대를 주름잡던 메인프레임을 필두로 중앙 집중화와 분산화/분권화를 반복해 왔습니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는 클라이언트-서버 시대로 컴퓨팅 파워가 강력해진 PC를 중심으로 한 분산 컴퓨팅이 확산되었고, 무엇보다 확장성을 자랑하던 시대였습니다.
이제는 모바일-클라우드 환경에서 다시 한 번 클라우드를 중심으로 한 데이터 보관과 처리의 중앙 집중화 시대를 맞았습니다. 하지만 실리콘 밸리를 중심으로 2020년부터는 엣지 컴퓨팅 혹은 포그 컴퓨팅이 주도권을 잡는 분산 컴퓨팅의 시대로 이동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합니다.
분권화와 엣지 컴퓨팅의 미래
특히 요즘처럼 5G 이동통신 기술과 사물인터넷의 확산, 나아가 인공지능을 내장한 사물을 뜻하는 임베디드 AI의 등장과 맞물려 엣지 컴퓨팅이 더욱 필요한 시기입니다. 실제로 5G 기술은 스마트 공장이나 물류창고 안에서 다양한 센서를 탑재한 생산 설비와 로봇, 차량 사이의 실시간 통신과 대응을 돕는 데 활용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인더스트리 4.0과 인더스트리 5.0의 발전과 확산에 기여하고 있죠.
중앙의 클라우드와 가끔씩 연락을 주고 받는 엣지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사물인터넷 센서를 통해 주변 상황을 감지하고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떤 일이 생길 지를 추론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바로 조치를 취하고 중앙의 클라우드에 알리죠. 싱가포르의 가로등 침수 센서 사례를 통해 살펴 본 내용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클라우드의 역할은 사라진 걸까요? 아닙니다. 누군가는 클라우드가 인간의 뇌 모양을 닮았다고도 합니다. 생긴 모양이 비슷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실제로 하는 일도 유사합니다. 인간의 뇌가 몸 안팎에서 일어나는 일을 통해 학습하고 주변 환경에 대응하는 힘을 키우듯이 클라우드도 엣지 컴퓨팅을 통해 큐레이션 된 데이터를 받아 학습하고 더 나은 대응력과 판단력을 키워 갑니다.
얼마 남지 않은 2020년. 엣지 컴퓨팅과 포그 컴퓨팅이 확산되는 원년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고맙습니다.
참고로, 영어 강연이기는 합니다만, 엣지 컴퓨팅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한 유튜브 영상을 소개합니다. 이 글에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이기도 한 미국의 IT 벤처투자 전문회사 앤드리슨 호로위츠(Andreessen Horowitz)의 파트너, 피터 르빈(Peter Levine)의 강연, 클라우드의 종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