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작은 연마가 조직을 지킨다. 목적의식 있는 리더는 대규모 변혁(트랜스포메이션)에 기대기보다, 셰프가 매일 칼을 호닝하듯 전략적 방향을 조금씩 점검하고 바로잡는 습관을 통해 표류(Drift)를 막고 성공에 한 걸음씩 다가간다.


기획: 박범순(Adam Park), 글쓴이: 클로드(Claude)

변화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리더들은 더 크고 더 과감한 변화를 선택하려 한다. 인공지능(AI), 디지털 전환, 기후 위기, 공급망 재편 등 어느 하나도 작지 않은 이 도전들 앞에서 ‘대규모 트랜스포메이션’은 선택이 아닌 필수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전략 컨설턴트이자 『Hone』의 저자 제프 터프(Geoff Tuff)와 스티븐 골드바흐(Steven Goldbach)는 이 통념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진짜 문제는 변화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드리프트(Drift)라는 것이다.

드리프트: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벌어지는 이탈

항해를 상상해보자. 바람과 조류의 미세한 변화, 혹은 사소한 실수 하나가 배를 조금씩 원래 항로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초반에는 거의 알아차릴 수 없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나면 배는 전혀 엉뚱한 바다에 떠 있게 되고, 그제서야 대대적인 방향 수정이 불가피해진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전략으로부터의 작은 이탈은 시간이 쌓이며 복리처럼 커진다. 경쟁자의 움직임, 기술 변화, 규제 환경의 변동, 고객 니즈의 진화 같은 외부 요인뿐 아니라, 조직 내부의 타성과 소통 부재도 드리프트를 가속한다. 문제는 이 표류가 처음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위험하다.

저자들은 경고한다. 대규모 트랜스포메이션은 이 드리프트에 대한 잘못된 처방이다. 칼을 너무 자주 ‘벼리면’ 날이 얇아지고 부러지기 쉬워지듯, 조직도 변혁을 거듭할수록 취약해진다. 트랜스포메이션은 비용이 크고 실패 확률도 높다. 진짜 필요한 것은 매일의 작은 조정, 즉 연마(Hone)다.

AI를 빠르게 쓸수록, 창의력은 왜 느려질까? | 특집 기사

AI는 빠른 완성품을 내어주는 도구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만들어가도록 이끄는 멘토로 써야 합니다. 망설이고 고치고 직접 손대는 그 느린 과정이 바로 창의력이 자라는 자리입니다. 마야 애커만 박사가 제시하는 “겸손한 창작 동반자“로서의 AI를 만나보세요.

칼을 연마하는 셰프의 지혜

책의 첫 장에 등장하는 인물은 뉴욕의 프리랜서 셰프 플래너리 클레트-콜튼(Flannery Klette-Kolton)이다. 저자들은 그녀가 요리를 시작하기 전 칼을 다루는 모습을 보며 묻는다. “왜 매번 칼을 갈아요?”

그녀는 즉시 바로잡는다. “갈고 있는 게 아니에요. 연마(hone)하는 거예요.”

칼날의 미세한 톱니들은 사용할수록 흐트러진다. 호닝(honing)은 이 톱니들을 다시 정렬시키는 작업이다. 날카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날카로움을 유지하는 것이다. 아마추어는 칼이 완전히 무뎌질 때까지 방치하다가 대대적인 수리에 들어간다. 프로는 매일 조금씩 연마하며 칼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한다.

“호닝은 유지이자 명상이다. 오늘 내 도구와 함께 최선의 출발을 하겠다는 다짐이다.”

플래너리 클레트-콜튼(Flannery Klette-Kolton), 프리랜서 셰프

이것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메타포다. 리더는 조직을 셰프처럼 다루어야 한다. 매일 자신의 전략적 칼날을 점검하고, 작은 이탈을 바로잡고, 흐트러진 방향을 다시 정렬해야 한다.

AI 시대에도 고객이 끊임없이 찾아오는 브랜드의 비밀 | 특집 기사

AI 시대, 제로클릭 시대에 가장 신뢰받는 브랜드가 되는 비결이 있을까? 타조처럼 고객의 질문을 회피하는 대신, 가격, 단점, 경쟁사 비교 등 고객이 가장 알고 싶어 하는 것을 먼저 말하고 보여주는 것이 바로 끊임없는 고객을 만드는 비결이다.

장인들이 가르쳐주는 것

저자들은 셰프 외에도 세 명의 장인을 통해 이 원칙을 더욱 구체화한다.

네덜란드 출신의 항해 사진작가 오네 반더웰(Onne van der Wal)은 바람이 거세게 부는 갑판 위에서, 혹은 물속에 반쯤 잠긴 채 셔터를 누른다. 수십 년의 항해와 촬영 경험을 통해 그는 물과 빛의 언어를 체득했다. 그의 장인정신은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끊임없는 미세조정의 산물이다. 완벽한 한 장의 사진을 위해 그는 매번 자신의 기술과 도구를 다시 점검한다.

아카데미 노미네이트 다큐멘터리 감독 샘 폴라드(Sam Pollard)는 영상이라는 매체를 통해 같은 원칙을 보여준다. 그는 각 프로젝트마다 촬영팀, 편집팀, 인터뷰 대상자 모두가 감독의 하나의 비전을 향해 수렴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설계한다. 위대한 감독은 위대한 시스템 디자이너다.

캐나다 록밴드 아워레이디피스(Our Lady Peace)는 변덕스러운 음악 산업에서 수십 년을 버텨온 비결을 보여준다. 그들은 트렌드를 쫓아 자신을 완전히 바꾸는 대신, 자신들의 ‘본질적 목적’에 뿌리를 두고 조금씩 음악적 진화를 이루어왔다. 정체성을 지키면서 변화한다는 것, 그것이 호닝이다.

카이젠: 개선의 복리 효과

『Hone』이 제시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개념은 일본의 카이젠(改善, Kaizen)이다. 제조업과 공장 운영에서 입증된 이 철학은, 작고 지속적인 개선이 시간이 지나면서 복리처럼 쌓여 거대한 성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보여준다.

저자들은 이를 린스타트업의 MVP(Minimum Viable Product, 최소 기능 제품)와 유사한 ‘최소 실행 가능 움직임(Minimally Viable Move)’이라는 개념과 연결한다. 모든 것을 한 번에 바꾸려는 거대한 변혁 대신, 작고 검증 가능한 실험을 반복하는 것이다. 피드백을 빠르게 수용하고, 실수에서 배우고, 방향을 미세하게 조정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이 방식은 리스크를 줄이고, 조직 안에 학습과 개선의 문화를 뿌리내린다.

보이지 않는 것의 힘: AI 시대에 정말 중요한 것들 | 특집 기사

우리는 보이는 것, 측정 가능한 것만 중요하다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생존 편향데이터 편향측정 편향이 보여주듯, 신뢰, 윤리, 지혜, 맥락 등 AI 시대에 진짜 중요한 것은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리더에게 보내는 메시지

터프와 골드바흐는 오늘날의 리더들이 두 가지 함정에 빠져 있다고 진단한다. 하나는 거시적 비전만 바라보며 실행의 세부를 외면하는 것, 다른 하나는 위기가 올 때마다 대규모 변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두 가지 모두 드리프트를 가속한다.

진정한 목적의식을 가진 리더는 플래너리처럼 매일 칼을 연마한다. 큰 그림을 잃지 않되, 오늘의 작은 이탈을 오늘 바로잡는다. 전략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매일 축적되는 선택들의 총합이기 때문이다.

변화가 많은 세상일수록,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칼이 아니다. 날을 세우는 매일의 습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