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술과 수경재배, 분무식재배를 활용해 땅의 한계를 초월한 수직농업. 소비자가 밀집한 도시 근처나 도심지 창고 건물, 남아 도는 사무실 공간을 활용해 로컬푸드 운동의 새 장을 열고 있습니다. 가까운 곳에서 신선한 채소를 얻을 수 있는 세상입니다.
글쓴이: 박범순(Adam Park)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자주 듣던 말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난다”는 말처럼 잘 심고 가꾸기만하면 어느 정도는 예상한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양가 부모님 모두 집 근처에서 조그만 텃밭을 가꾸는 걸 좋아하신다. 심은대로 거두는 즐거움 때문이다. 제 때 물을 주고 거름을 쳐야 해서 오래 집을 비우지 못하는 문제는 있다.
농업혁명이 시작된 1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땅은 그렇게 똑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실은 농업도 큰 변화는 없었다. 아무리 생산성을 높이려고 해도 일정한 면적의 땅에서 수확할 수 있는 작물의 양은 한정되어 있고, 태풍이나 가뭄 같은 자연재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또 같은 작물을 한 곳에 오래 심으면 필요한 양분이 고갈되기 마련이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인가?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 유발 하라리 교수는 2011년 사피엔스를 집필하면서 인류의 발전을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 등 세 가지 변화의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그 중에서 농업혁명은 인류의 불평등, 농부의 노동량 증가, 가뭄 피해, 면역력 약화 등의 문제를 낳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라고 규정한다.
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다른 곳으로 옮겨 가기가 쉽지 않고, 풍년으로 농작물을 보관하고 있다보면 외부의 침략이 두려워 성벽을 높이 쌓고 지켜야 했다. 밀이나 쌀 등 일부 작물 위주로 경작하다 보니 가뭄이나 홍수, 태풍이 오면 기근 문제가 커지기 마련이다.
물론 농업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기업농을 중심으로 기계화, 자동화, 자율화 등의 노력을 전개해 오고 있기는 하다. 최근에는 머신비전, 기계학습 등 기술의 발전으로 사과나 딸기를 골라 수확하는 로봇도 있고 잡초만 골라 제초제를 뿌리는 기계도 등장했다. 자율주행 기능으로 운전하는 사람 없이 밭을 일구는 트랙터도 나왔다.
하지만 여전히 자연재해나 병충해 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땅 속의 영양분 고갈 등의 문제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단위 면적에서 생산할 수 있는 수확량 역시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또 땅은 잡초나 해충이 번지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제초제와 살충제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미래의 농업에 대한 실마리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혹시 땅을 벗어나야 하는 건 아닐까?
땅을 벗어나기 1. 수경재배
우리가 먹는 채소류의 90%는 수경재배(hydroponics)가 가능하다. 물만 있으면 땅을 벗어나 병충해 걱정 없이 제초제, 살충제 등의 화학 약품을 쓰지 않고 키울 수 있다는 뜻이다. 수경재배는 사용한 물을 재활용해서 다시 쓰기 때문에 토지에 경작하는 경우보다 물을 적게 쓴다. 통제된 환경에서 필요한 만큼 영양분을 제 때 공급할 수 있어 일정한 속도로 수확이 가능하다. 또 빨강, 파랑 LED를 활용해 성장 속도를 높인다.
최근 미국의 뉴저지를 중심으로 디지털 기술과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농업을 혁신하고 있는 기업이 있다. 수경재배를 이용해 자원 투입을 최소화 하고 유기농보다 더 신선하고 제초제나 살충제를 쓰지 않는다. 벤처 투자를 받고 있는 바우어리파밍(Bowery Farming)의 어빙 페인(Irving Fane) 회장은 “질 좋고 신선한 채소를 누구나 경제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민주화”라고 밝혔다.
바우어리파밍은 센서 데이터를 활용해 작물의 상태를 상시 모니터하고 꼭 필요한 양분을 제 때 공급한다. 소비자가 원하는 맛과 채소 잎의 두께와 단단한 정도 등을 조절하는 지식을 바우어리OS라는 소프트웨어에 쌓아 두고 농법을 발전시켜 가고 있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대부분 자동화 된 농장을 움직이고 사람에게 작업 지시를 내린다.
수경재배도 단점은 있다. 물 속에 깊이 잠겨 있는 뿌리는 땅 속에 있는 뿌리에 비해 숨을 잘 쉬지 못한다. 한 마디로 산소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 물 사용량도 땅에서 재배할 때보다 95% 줄인 혁신적인 방법이 분무식재배(aeroponics)다.
땅을 벗어나기 2. 분무식재배
분무식재배는 미 항공우주국(NASA)이 우주정거장이나 우주선처럼 좁은 공간에서 소량의 물로 작물을 재배할 방법을 연구하면서 발전된 기술이다. 출발점부터 땅을 벗어난 우주 공간을 무대로 삼고 있다는 점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까운 미래에 화성에 지구인들이 정착하게 되면 먼저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분무식재배는 디지털 시대의 농업 기법이라 할 수 있다. 작물의 상태를 시시각각 살피고 물과 영양분이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분무기로 뿌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 회자되고 있는 센서 기반의 사물인터넷(IoT) 기술이 대표적으로 활용된다.
이 외에도 기계학습(머신러닝, ML)을 통한 농작물 성장 패턴 인식이나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원하는 맛과 품질의 채소를 재배하는 일 등도 가능하다. 쉽게 구하기 힘든 식재료를 유명 식당의 셰프들을 위해 준비할 수도 있다. 실제로 팜원(Farm.One)은 전세계 셰프들을 위해 희귀한 허브, 식용 꽃, 새싹채소(마이크로그린) 등을 공급한다.
디지털 경제의 특징처럼 소비자가 원하는 곳에서 신선한 식재료를 바로 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무리 구하기 힘든 희귀한 재료라도 구할 수 있게 된 것이 바로 디지털 기술에 기반을 둔 분무식재배, 즉 에어로포닉스 덕분이다. 3D 프린터로 원하는 부품을 바로 인쇄하는 것처럼 도심지에서 소비자가 원하는 신선한 채소를 기존보다 서너배 이상 빨리 공급한다.
땅을 벗어나기 3. 수직농업
디지털 기술과 수경재배와 분무식재배를 활용해 땅을 벗어나기 위한 농업 기법의 꽃은 수직농업이다. 도시형 수직농법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소비자가 밀집한 도시 근처나 도심지 안의 창고 건물, 남아 도는 사무실 공간 등을 활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농업이 땅을 2차원적인 평면으로 이해했다면 수직농업은 3차원 사고를 품고 있다. 예컨대 같은 면적의 땅에 10층에서 20층 정도로 분무식재배나 수경재배 선반을 쌓아 올리면 생산성은 20배 정도로 올라간다. 최근에는 식물의 성장을 촉진하는 빛이 빨강과 파랑 주파수라는 사실이 밝혀 지면서 이 두 가지 빛의 저전력 LED를 사용해 전기 소비를 줄이는 추세다.
땅과 함께하기: 로컬푸드 운동
먹거리의 이동 거리가 늘수록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커지고 장기간 보존을 위한 약품 처리 등으로 건강에도 안좋은 영향을 준다. 이름하여 푸드 마일리지.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유럽에 이어 미국에서도 로컬푸드 운동이 한창이다. 문제는 지역 공동체에서 생산한 농작물의 수급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경제 용어로 말하자면 확장성, 즉 경제성 있게 규모를 늘릴 수가 없다는 말이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로컬푸드 운동은 자연재해와 병충해 등 자연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파머스마켓, 공동체 지원 농업(CSA) 등의 활동으로 경제력을 확보해가고는 있지만 대도시의 인구를 먹여 살릴 만한 규모와는 한참 먼 얘기다.
도시 소비자 가까이에서 생산한 농작물을 신선하게 소비하도록 하자는 로컬푸드 운동은 도심지에서도 재배가 가능한 수직농업을 만나 전에 없던 규모를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수직농업은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작물을 재배할 수 있다.
디지털 시대의 농업이라 할 수 있는 수직농업은 어쩌면 멀지 않은 미래에 화성에 인류가 정착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모른다. 소량의 물만 있으면 무슨 작물이든 재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필요한 건 전기. 태양광 발전과 저장설비를 활용해 필요한 전기를 확보한다면 전혀 불가능한 얘기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수직농업은 디지털 시대를 넘어 우주 개척 시대에 먹거리를 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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