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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르네상스 혁신의 시기를 이끈 서양의 대표 인물이 레오나르도라면 동양에는 그보다 앞서 바로 세종 이도가 있었다. 혼자하는 발명과 함께하는 혁신의 차이, 사람을 향하는 혁신과 디자인 씽킹, 4차 산업혁명의 공통점을 만나보자.

글쓴이: 박범순(Adam Park)

우리나라 역사에서 대왕이라는 칭호를 받은 임금은 얼마나 될까? 대륙으로 영토를 넓힌 광개토대왕과 과학 기술과 언어학, 음악, 농업, 역사 등 다방면에 걸친 지식 발전을 이룬 세종대왕, 이렇게 두 분뿐이다. 그 중에서도 백성을 위해 쓰기 쉬운 우리 고유의 문자를 만든 세종 이도는 15세기 르네상스 혁신의 시기를 이끈 레오나르도 다빈치 못지 않은 동양의 대표적인 발명가다.

혁신은 어디에서 오는가

어머니도 떠나고 어린 시절부터 혼자 지내던 레오나르도는 구름, 새, 물 등 자연을 유심히 관찰하며 호기심을 키워 갔다. 관찰하고 생각한 내용을 그림으로 그리면서 세상 만물의 작동 원리를 탐구해 나갔다. 어린 레오나르도가 그림에 소질이 있다고 본 아버지는 당대 최고의 화가 베로키오의 공방에 보내 그림과 조각, 건축 설계 등 다양한 기술을 익히게 했다.

자연에 대한 호기심, 그림 솜씨, 수학, 공학 등의 교육이 한 데 어우러져 세상 만물의 작동 원리를 밝히고자 한 레오나르도는 혁신의 아이디어를 자연스럽게 자연에서 찾았다. 새의 나는 모습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최초의 헬리콥터를 설계하고 물의 힘을 활용할 펌프, 낙하산 등이 대표적인 혁신 사례다.

이에 비해 세종 이도는 백성을 가엾이 여기고 자식처럼 사랑하는 애민정신에서 혁신의 아이디어를 찾아 나섰다. 훈민정음을 만들 때도 “어리석은 백성이 억울한 사정을 이야기하고 싶어도 글을 몰라 책으로 배운 것도 없고 제대로 호소할 수도 없는” 안타까운 모습에 대한 연민의 정을 느낄 수 있다.

출산을 앞둔 관비에게 1개월 전부터는 일을 하지 않도록 하고 출산 전후로 100일 간의 출산휴가를 주며, 산모를 돌볼 수 있도록 남편에게는 1개월 간의 육아휴직을 지원했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 없이는 떠올리기 힘든 시대를 앞선 혁신적인 제도를 만든 것이다.

디자인씽킹은 사람을 향하는 혁신

요즘 유행하는 디자인씽킹도 이처럼 사람에 대한 사랑과 연민, 공감에서 출발한다. 영어로는 엠퍼시(empathy)라고 하는데 생각이나 느낌, 감정을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도 실제로 경험하는 것처럼 느끼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사람을 향하는 마음으로 진짜 문제를 발견하고 빠른 실천을 통해 더 나은 답을 찾아 나서는 일이 디자인씽킹이다. 세종 이도는 이미 시대를 앞서 디자인씽킹을 몸소 실천한 인물이다.

우리 백성을 중심으로 생각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천문 관측, 달력, 음악, 농업 이론 등을 우리 환경에 맞게 재해석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재정립 했다. 농업 서적이나 삼강행실도 등의 책을 만들어도 글을 읽을 수 없는 백성들에게 큰 도움을 주지 못하자 신하들의 반대에도 훈민정음으로 된 번역서를 만들도록 한 것도 세종 이도의 마음이 사람을 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혼자하는 발명, 함께하는 혁신

레오나르도가 혼자 지내며 자연을 관찰해 원리를 발견하고 혁신적인 발명품의 아이디어를 만들어냈다면, 세종 이도는 사람을 중심에 둔 혁신을 추구했다. 신하들과 주제에 대해 토론하고 반박하며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경연을 정례화 하고 적극 참여했으며, 요즘으로 보면 프로젝트에 해당하는 다양한 도감을 만들었던 것도 넓게 보면 백성을 위해 함께하는 혁신이다.

발명은 혼자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고 사람의 삶을 개선하는 혁신은 진짜 문제를 찾는 일부터 시작해 빠른 실천으로 조금씩 더 나은 답을 완성해가는 일까지 디자인씽킹 방법론처럼 함께 해야만 가능한 일이 아닐까?

세상 만물은 연결되어 있다

레오나르도가 태어나기 2년 전에 세상을 떠난 세종 이도. 세상 만물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역설한 레오나르도의 말처럼 이도와 레오나르도 역시 서로 연결되어 있다.

더 나은 세상,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 생명을 존중하는 삶을 살고자 한 모습 역시 두 인물의 공통점이다. 백성을 가엾게 여긴 세종 이도 못지 않게 레오나르도는 자연에 속한 여러 생명을 소중히 여겼다. 시장을 지나다가 새장에 갇혀 있는 새를 만나면 바로 돈을 주고 사서 새장 밖으로 날려 보내는 모습은 자연 속에서 자유로운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 생명에 대한 존중이 아닐까?

사람을 향하는 4차 산업혁명

디지털 네트워크 경제를 살아가는 지금. 여기저기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구호가 난무하는 상황이지만 언제나 그렇듯 겉으로 외치는 소리보다는 과연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혁신이 무엇을, 누구를 향하는 것인지를 분명히 할 때 세종 이도와 같은 위대한 혁신을 이룰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혹은 인더스트리 4.0도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맞춘 제품뿐 아니라 교육, 의료 등의 서비스도 경제적으로 개인화, 맞춤화하는 시대를 만들고자 한다. 세종 이도의 애민정신에 버금가는 사람을 향하는 혁신으로 가득한 세상. 그것이 진정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디지털 혁신의 지향점이다.